작년 봄쯤 이었던 것 같다. 광화문에서 기거하는 지인의 이사를 도와주다가 '저긴 뭐 하는 데지? 그릇 파는 가게야?'하며 호기심 있게 보았던 조그만 국수가게, 사발을 처음으로 알게 된 때가. 보통 국수가게라면 뭔가 후덕스럽고 급하게 한 그릇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만인 공간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곳 사발에서는 뭔가 여유롭고 묵직한 식사로 재탄생한 국수들이 떡 하니 기다리고 있다.

단무지나 깍두기 혹은 김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국수 밑반찬이 요로코롬 상큼하게 변신한다.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연어샐러드는 입안을 충분히 침으로 적셔 놓을 만큼의 상큼함과 시큼함이 있다.
양파, 무, 오이 등의 채소를 비트로 붉게 맛 들인 채소 피클과 무김치는 잔치 국수와 같은 슴슴한 국수의 부족한 간을 채워주기에 딱 맞다. 하지만, 다른 국수들은 기본적으로 간이 강해서 이 밑반찬들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처럼 욕 나올 정도의 차디찬 공기가 그득할 땐, 이 해물김치국수 한 사발이면 그나마 평상심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칫국물의 칼칼함과 해물 육수의 시원함이 어우러진 이 국수의 국물은 먹다 남은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싶은 충동을 부른다. 이런 유혹적인 국물에 홍합, 오징어, 미더덕, 바지락, 부추 등의 건더기를 듬뿍 올려 다양한 씹는 재미도 준다. 

사발에서 내놓는 국수의 면을 잘 살펴보면 분홍색 면과 초록색 면이 있다. 분홍 면은 쌀을 발효시키면 저렇게 붉은색으로 변하는데, 그걸 면으로 만든 것이고 초록 면은 클로렐라를 혼합시켜 만든 면이다. 면 요리를 먹고 나면 왠지 부대끼는 분들에겐 좀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순전히 느낌과 예측입니다. - 이렇게 강조 안 하면 허위사실 유포죄가 성립될지도 모르는 요즘이다.)

모양새가 참 다소곳 해보이는 황태비빔국수. 그러나 맛은 보기와는 다르게 꽤 강렬하다. 과일 양념으로 감칠맛을 강조한 매콤함은 그윽하기보단 뭔가 톡!쏘는 알싸함이 있다. 자극적인 매운맛을 평소에 즐기시는 분이라면 입맛에 딱 맞을 테고, 매콤달콤중에서 달콤한 쪽을 더 선호하는 입맛을 지녔다면 좀 반기지 않을 맛이다. 면발 사이 사이에 콕콕 박혀 있는 황태포와 아삭한 채소들은 밑반찬 같은 역을 대신한다. 황태포는 씹을수록 그 맛이 올라오는 게 비빔국수에 황태포 조합은 참 훌륭한 발상이다.


사발에서 최고로 사치로운 국수인, 궁중국수. 이름에서도 그 수준을 가늠케 하는데, 진한 닭 육수에 자연산 송이버섯, 인삼, 전복, 대하, 홍합, 닭 가슴살, 부추 등의 온갖 고명을 빼곡하게 담아 낸다. 평소 가볍고 맑은 멸치 국물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궁중국수의 묵직한 국물은 삼계탕에서 느끼는 기름진 육수 맛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릇도 사발의 다른 국수에 비해서 좀 더 넓은데, 평소 양이 많은 분께 적당한 양일 듯. 그러나 질보다 양이 우선인 분들은 이 궁중국수 한 사발 보단 다른 국수 두 그릇 드시는 게 더 양에 찰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국수로도 보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영양 국수다.


사발은 국수 전문 가게지만, 국수만 있지는 않다. 자고로 식사는 밥이어야지 하는 골수 밥 마니아를 위한 꼬막밥이다. 향신료로 노랗게 물들인 밥에 꼰득한 꼬막과  김 가루, 버섯, 다진 소고기, 채소를 올린 영양식. 비빔 장 한 숟가락 흩뿌려서 푸석푸석 비벼서 먹으면, 맛도 영양도 골고루 인 별미 밥.
그래도 명색이 국숫집인데, 맛이라도 보라며 미니잔치 국수가 함께 나온다. 보는 만큼이나 양이 좀 적어서 남성분들은 광랜 같은 속도로 그릇을 비울 수 있으니, 메뉴 선정 시 주의 요망.


꽤 정돈돼 있어 보이고, 캐쥬얼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이 강한 실내 모습이다. 한쪽은 통유리로 돼 있어서, 햇살 풍족한 주말 점심엔 여유롭고, 밝디밝은 식사가 가능하겠다.
참 따스한 모습이 그려지죠? 하지만, 극 초반 데이트 중이라면 점심때는 피하셔야 합니다. 스모키 화장인 줄 알았던 게 다크스클이었음이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막대한 광량이 드리워 집니다. 그것도 채 1m도 안 되는 거리를 마주하고 말이죠. 이미 적지 않은 분들이 점심에서 저녁으로 '급' 변경했겠죠?!
대로변에 찾기 쉽게 자리 잡은 게 아니라 광화문 빌딩 숲 저 안쪽에 콕! 박혀 있어 작정하고(?!) 가거나 길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하지 않고는 방문하기 힘들다. 지도 검색 서비스로 대충 어디쯤인지 보고 찾아 나서는게 여러모로 편할 것 같다. 사발의 국수는 익히 알고 있던 그런 국수의 잣대로 저울질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국수가 이런식으로도 가능하구나! 하는 색다른 느낌과 맛을 얻어갈 수 있다는 데 좀 더 의미를 두고 발걸음 하면 좋은 곳이다.     ⓒ 글과 사진 | 금요일이야기

참 오랜만에 포스팅을 해보는 것 같습니다. 지치지 않고 발걸음 해주신 분들. 무척 고맙습니다.(꾸벅) 그동안 왜 이토록 방치를 해두었냐 하면, 126가지의 변명거리를 들이 댈 수 있겠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동안 닫힌(다친) 감성이 문제였어요. 닫혀(다쳐)있던 감성을 여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나봐요. 아직도 활짝 열린 건 아닌지라 '따스한 봄날이 올 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가 아니라 찬 겨울에 봄날이 오는 것처럼 조용조용 시나브로 움직일까 합니다. 자주 뵈어요~ ^^/


2009/01/14 09:09 2009/01/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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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UMA 2009/01/14 09:28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랜만의 업데이트^^ 잘봤어요. 이렇게 추운날 궁중국수 정말 맛있겠는데요^^
    그런데 일욜이리 휴무라서 안타까워요.. 꼭 가보고 후기 남길께요~^^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4 23:57  수정/삭제

      궁중국수를 선택하시다니 좀 사시나봐요 ^^ 궁중국수는 제가 먹어봤으니 된장국수 후기 부탁해요 ㅎ

  2.  
  3. ziyo 2009/01/14 10:03 수정/삭제댓글달기
    김치해물국수 한 그릇하고 꼬막밥 둘이서 나눠먹으면 배 빵빵 두드리며 기분좋게 나올 수 있겠네요, 날풀리면 종로 맛집 종이에 잔뜩 적어서 하루죙일 돌아다니며 먹어봐야겠어요.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4 23:58  수정/삭제

      ㅎㅎ 종로에서 여기까지 오다 보면 여긴 저녁먹을 곳이 되겠어요.
      국수부터 먹고 종로로 향하는 코스가 더 좋을것 같은데...

  4.  
  5. 서현 2009/01/14 10:14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늘같이 눈오고 추운 날.. 딱 생각나게 하는 메뉴들이로구만.. 언제 함 가서 먹어 볼까나 ㅋㅋㅋ 언넝 상경해야지.. 키키.. 오늘하루도 잘 보내셔 오라범 ^^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4 23:59  수정/삭제

      어! 그짜 오늘 눈와삔나? 와 시내 얼라 바글바글 했겠데이..

  6.  
  7. lana02 2009/01/14 10:15 수정/삭제댓글달기
    여기 가본적있는데... 국수를 먹는 느낌이 정말 남달랐어요.
    가볍게 한 그릇먹는 국수가 아닌...
    한 가치 한가치... 예쁘게 먹어야 할 것같은....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4 23:59  수정/삭제

      아 예쁘게 먹었어야 했는데, 전 평소처럼 와구 와구 먹어 버렸네요;;

  8.  
  9. 김Su 2009/01/14 10:56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맛있겠어요...나중에 꼭 가봐야할거같다능..ㅋ
    닫힌감성이 열리기 시작하셔서 다행입니다^^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0  수정/삭제

      흐흐흣 다시금 찾아 주셔서 무척 고마와요 ^^ 점점 더 열어볼께요~

  10.  
  11. Lady 2009/01/14 11:53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늘 아침에 정말 먹고싶었다 .................ㅜㅜ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1  수정/삭제

      맨날 배고파! ㅎ

  12.  
  13. ㅇㅇㅅㅅ 2009/01/14 13:51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랜만에 업데이트~기다렸어요~^^*궁중사치국수를 꼭 먹어보고 싶네용~ 봄이오면 활짝 감성이 열리셔서 앞으로 자주 뵈었음 좋겠어욧~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2  수정/삭제

      ㅎㅎ 사치국수.. 오히려 이런 이름이 더 재밌었겠네요.
      화알짝 ^___________________________^

  14.  
  15. rince 2009/01/14 14:57 수정/삭제댓글달기
    점잖치 않은 표현을 빌려서 말씀드리면...

    조낸 기다렸습니다. ^^;;;;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3  수정/삭제

      ㅠㅠ rince형님.. 이런 반겨줌.. 열라리 고마워요 ^^;;
      이렇게 간만에 등장해야 반겨주실꺼죠?! ㅋ

  16.  
  17. 경표 2009/01/14 17:11 수정/삭제댓글달기
    맛나겠다...나도 델고가~~~~~~~~~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3  수정/삭제

      가게 닫고 나와!

  18.  
  19. Brad 2009/01/14 17:26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랜시간 기다렸습니다.
    자주 좋은 글 부탁드릴께요. 좌우간..힘내세요~~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4  수정/삭제

      많이 지치셨죠?! 그래도 기다려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

  20.  
  21. Brad 2009/01/14 17:27 수정/삭제댓글달기
    아.. 너무 반가워서 한마디 더 쓰고 갑니다~~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5  수정/삭제

      아.. 저두 너무 고마워서 댓글 한 줄 더 달고 넘어갑니다~~ㅋ

  22.  
  23. 김소 2009/01/15 00:01 수정/삭제댓글달기
    오랫만의 업뎃이구나.
    카운터 터는 사람 너야? -_-;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15 00:05  수정/삭제

      난 사진 찍는 사람.

  24.  
  25. mifa 2009/01/19 13:20 수정/삭제댓글달기
    음.. 지금 점심 먹어야 하는데..
    국수 먹으러 가긴 너무 멀군요..
    아쉬운대로 안성탕'면'이나 끓여볼까~
    갈비만두 먹고 왔어요.. ^^
    2,500원으로 올랐더군요..
    맛난집 알려주셔서 땡큐예요~
    갠적으로 황태비빔국수와 꼬막밥이 맛나겠어요..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21 22:02  수정/삭제

      앗 안녕하세요 mifa님~
      이렇게 첨으로 인사 여쭙네요ㅎ(게을러서 죄송)
      아! 물가의 상승곡선을 갈비만두라고 적용 안되는건 아니네요^^;
      음 저두 지금 출출한 나머지 비빔국수가 좀 땡기네요 >.<

  26.  
  27. 둘둘 2009/01/19 16:15 수정/삭제댓글달기
    간만에 들렀어요.. 맛있겠다~추우니까 국수생각 많이 나던데~

    감기조심하시구요.. 틈틈히 많이 올려주세요 ^^

    그리고....맨앞에 재해색....이라고 오타....그냥.....발견했어요 ;; ㅎㅎ
    • 금요일.이야기 주인장 2009/01/21 22:03  수정/삭제

      어 그거 일부러 낸 오타라면 믿을꺼야?! ㅎ

  28.  
  29. 지니 2009/04/22 16:01 수정/삭제댓글달기
    어 맛나겠다 나도 국수요리 좋은뎅 ㅋ 오랫만에 들어 오지 말란 소리 듣고 들어오니까 볼거리가 꽤 생기긴 했구나 ㅎ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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